
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.


아흔아홉 냥 가진 놈이 한 냥을 탐내는 성미를 알고 있는 터였다.
그러나 부자들이 가난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못 생각해 본 일이었다.


그들의 빛나는 학력, 경력만 갖고는 성이 안 차 가난까지를 훔쳐다가
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.


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
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.
나는 쓰레기더미에 쓰레기를 더하듯이 내 방 속에
무의미한 황폐의 한가운데 몸을 던지고 뼈가 저린 추위에 온몸을 내맡겼다.
박완서의 단편 <도둑맞은 가난>에서


얼마전 정치하는 사람들이
연탄 사용으로 겨울을 어렵게사는 마을에
위문,봉사하는 기사가 사진과 함께 인터넷에 올랐었다.
연탄이 실려있는 리어카 주변에는 몇십명이 둘러있고
뺨엔 일부러 묻혔는지 검정자국을 묻힌채, , , , ,
진정한 봉사? 아니면 의도된 코스프레?
박완서작가의 글이 되새겨지는 하루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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